[김무종의 세상보기] 노동환경 나아졌다지만
[김무종의 세상보기] 노동환경 나아졌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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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청계천 일대에 평화시장 등 봉제 시장이 형성돼 있을 때 천여개의 영세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일하던 노동자 중 시다(견습공)를 거쳐 재단사가 된 전태일 열사. 그가 온몸으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죽음으로 맞선 지 어제가 49주기였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올해 청계천에는 전태일 기념관이 생겼습니다. 3층에는 전시관을 마련해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전 열사는 법이 있어도 준수되지 않고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인 여공들을 안타까워합니다. 근로시간 단축과 주 1회 휴식은 그가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여공들은 옷감에서 나는 먼지가 가득 찬 방에서 하루 13~16시간씩 일했습니다. 다락방 작업 공간은 천장이 낮아 허리를 펴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폐결핵, 신경성 위장병까지 앓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근로환경은 성장기 소녀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합니다. 전태일 자신도 그들 처지와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불합리의 세상에 노동운동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게 하려고 분투합니다.

재단사가 된 전 열사는 시다들을 부리며 자기 기술을 팔아 웬만큼 먹고 살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실제 그의 월급은 당시 기자보다 많고 교사보다 못한 수준으로 적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의로운 길을 택한 것은 그의 순수함과 이타심에 따른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기업의 자본 축적을 돕기 위해 노조 결성을 막고 탄압했습니다. 빠르게 경제성장은 했지만 대기업 독점과 노동 소외는 한국경제가 소수 재벌에 종속되는 현상을 초래했고, 심각한 분배 악화와 불공정 경제 체제를 낳았습니다. 절대적인 임금은 과거와 비교해 많이 올랐지만 양극화 등 본질적인 문제는 지금도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아니 오히려 확대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달 중 삼성전자 노조가 양대 노총 산하로는 처음으로 뒤늦게 출범합니다. 무노조 경영을 추구한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의 노조 설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주요 그룹 중에는 노조가 없는 곳이 있습니다.

국회에는 심상정·이정미·홍영표·김영주·이용득·여영국 등 노동계 출신 의원도 여럿 탄생했습니다. 노동자를 위해 크게 바뀔 것도 같지만 제도 개선 등에는 유가족들이 나서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회는 물론 정부도, 사법부도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유가협(유가족협의회)을 만들었던 것처럼 노동자들이 안전사고 등으로 죽어 나갈 때 결국은 유가족이 나서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노동 현장에는 비정규직, 임금 등의 차별 및 양극화를 비롯한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는 심각합니다. 굴지의 노조 단체는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져 기득권을 놓지 않기에 약자와의 연대는 많이 약화되고 언감생심이 돼버렸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노동에 큰 빚을 졌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의로운 죽음은 그 시작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노력하는 것, 진리란 경험에 의한 양심의 소리’를 외치던 전태일 열사를 추모합니다. 그가 목숨을 내놓은 것은 20대 초반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노동 운동에는 사랑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남겼습니다. ‘사랑이란 모든 유무형의 으뜸이다.’ 그가 원했던 그날은 왔을까요? 아니면 오고 있나요? 전 열사를 추모하며 통화연결음을 ‘그날이 오면’으로 바꿔 봅니다.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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