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종의 세상보기]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
[김무종의 세상보기]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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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으면 최소한 자신의 비명(碑銘)은 남기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런데 조선의 청백리 박수량은 64세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절대로 시호를 청하거나, 묘비를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묘비는 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한다. 죽어서 아무 것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은 그의 평소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권력은 탐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장성에 있는 박수량의 묘비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아 ‘백비’다. 그는 ‘장관’인 판서로 있을 때 한양에 집 한 칸 없이 셋집에 살 정도로 청렴했다. 자식들이 서울에 집을 지으려고 하자 “나는 본래 시골 출신으로 성은을 입어 판서에 올랐으니 분수에 넘는 영광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찌 집을 지으려고 하는가”면서 크게 꾸짖었다.

그의 청렴은 오히려 독이 돼 시기하는 세력으로 모함을 받게 됐다. 명종은 사실여부를 확인한 결과, 암행어사는 집은 비가 새고 굴뚝에서는 한 달에 절반은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임금은 상여 맬 돈도 남기지 않은 그를 위해 비석을 하사했다. 청백함을 알면서 새삼스럽게 업적을 새기는 것은 오히려 명성에 누가 된다며 비석에는 아무것도 적지 말라 해 백비가 된 것이다. 박수량 백비는 그래서 지금도 더 빛나고 청백리를 흠모하는 이들이 그의 묘를 꾸준히 찾는다.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현황을 보면 웬만하면 수십억이 넘는다. 강남 거주시 전세값만 10억원을 훌쩍 넘으니 가족 재산까지 공개하는 장차관 등의 고위 공무원 재산이 수십억원을 훌쩍 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듯 보인다. 실제 고위공직자는 강남 요지에 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은 본인과 배우자는 물론 본인의 직계존속 직계비속까지 재산에 관한 등록사항과 변동사항을 신고토록 하고 있다(정무직 공무원과 4급 이상의 중앙·지방직 공무원, 판·검사, 대령급 이상의 장교와 군무원, 공기업과 공직유관단체 임원). 또한 행정부 소속 1급 이상 등 고위 공무원은 재산을 공개토록 돼 있다.

문득 고위공직자의 ‘적정 재산’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장차관 정도되면 얼마가 적정선일까.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적정 재산이라니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며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기본 질서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조국 청문회 등 하도 시절이 어수선하여 굳이 재산기준으로 장관을 발탁하면 어떠할 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재산이 녹선(錄選)의 전부 이유가 돼선 안된다. 그 잣대만으로 국익에 기여할 큰 인물을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식 이상으로 재산이 많다는 것은 왠지 찜찜하고 국민 정서상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장차관 기용시 우선 그의 본인 재산 축적 과정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면 어떠할까. 재산이 평균보다 두세배 이상 많으면 더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민들 의견도 묻고 말이다. 현재 가족 재산 전체를 합산 공개하는 이유는 당사자가 본인 재산을 가족에게 옮겨놓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순한 이전은 현재의 검증 절차로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것이기에 그 사람의 됨됨이를 오히려 더 잘 따져볼 수 있지 않을까.

조선에서는 청백리 제도를 운영했다. 말 그대로 ‘청렴하고 결백한’ 공무원을 발굴하고 대우해 주는 제도다. 청백리는 청렴·근검·도덕·경효·인의 등을 평가요소로 하며 그 중에서도 청렴이 으뜸이다. 청렴(淸廉)은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을 의미한다.

지금도 공무원들을 위한 청백리 제도가 있다. 하지만 주로 하위직 공무원 대상의 격려 성격이다. 장차관급 등 고위공무원을 뽑기 위한 신(新)청백리 제도가 필요하다. 이제는 최소한의 청백리 요건은 갖춰야 국민들로부터 신망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때다. 당사자도 나라를 이리 저리 운영해 보겠다는 소신이라면 청백리 요건은 갖춰야 최소한의 염치(廉恥)가 있을 것이다.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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