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어떤 은행 간부의 불만
[홍승희 칼럼] 어떤 은행 간부의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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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들의 얘기를 듣자 하던 차에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은행에 들러 기업대출 담당 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물적 담보가 아닌 기술력과 미래가치를 평가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고 한 직원은 기업은행이 창업자에게 공간을 비롯해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며 정부, 지자체 등과의 협력 확대로 스타트업의 가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기사의 문맥으로 보자면 전반적으로 매우 건설적인 의견들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며칠 전 만난 한 국책은행 간부는 불만에 차 있었다. 은행권에 무슨 얘깃거리가 없는지 물으니 얘기해주면 자신이 속한 은행을 '조질 수 있냐'고 물었다. 평소 매사에 긍정적이었던 그의 얘기가 놀라워 무슨 일인지 매우 궁금했다.

평소 그 답지 않은 거친 표현도 흥미롭고 하여 '쓸만하면 뭐...'라고 답하니 최근 자기네 은행에서 일어나는 인사문제에 대한 불만이었다. "전라도 지역에 쫙 깔렸어요." 엥? 뭐가요?

필자의 물음에 그는 전라도 출신 인사들이 전라도 지역에 대거 발령을 받은 사실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뭘 잘 알지도 못하는 386 운동권들을 쫙 깔아 놨어요."라며. 이대로 가면 우리 은행 망할거라고 개탄한다.

그의 불만에 정말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원래 은행에서는 출신지역에 따라 인사 배치하는 관행이 있지 않으냐고. 그 말에는 본인도 다소 우물우물한다. 초임지를 고향 가까이 배치하는 것은 일단 은행 영업상의 편의와 더불어 처음으로 지역을 책임지게 된 피인사권자의 부담을 덜어주며 업무에 무리 없이 적응해 나가도록 하는 배려이기도 할 터다.

내가 알고 있기로 경상도 출신의 그도 처음 지역본부 책임자로 나갈 때 고향 근처로 갔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왜 화를 낼까. 그의 말 중에 걸리는 게 있다면 아마도 '잘 알지도 못하는'이라는 표현과 '386운동권'이라는 표현 정도였다.

아마도 386세대가 지금쯤 지역 책임자로 나설 시기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이 취업할 당시 운동권 출신들이 신원조회에 걸려서라도 은행권, 그것도 국책은행 취직이 가능했는지 의심스럽다. 단지 그들 세대 대다수가 상대적으로 진보적 입장을 갖고 있기에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싶지만 만난 곳이 그런 자세한 얘기를 나눌 분위기는 아니어서 대충 얘기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모르는' 금융업무 미경험자에게 책임을 맡겼을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은행 내에서 어떤 이유로든 경력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소외된 채 세월 따라 직급만 올라갔던 이들이었나 보다 정도로 혼자 추측할 뿐이었다.

일반적 관례로 보자면 아마도 지역차별의 벽에 시달리던 이들이었지 않나 싶다. 이런 사례는 여기저기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 얘기를 들으며 김대중 정부 초기에 듣고 본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그 중 하나는 언론 산업이 가지는 슬픈 자화상이기도 했다.

그 이전까지는 대개의 언론사가 정치부 기자들에게 출입정당을 정해줄 때 당시 경상도를 기반으로 한 집권 여당에는 경상도 출신 기자를, 호남에 기반을 둔 제1야당에는 전라도 출신 기자를 내보내는 식이었다. 그래서 1당 장기집권이 고착화된 듯싶었던 시절, 정치부에서 전라도 출신들은 소위 '위를 볼'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아예 전라도 출신이 전혀 없는 신문사마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권교체가 되고 보니 비상이 걸렸다. 아예 전라도 출신이 정치부 내에 한명도 없던 모 신문사는 부랴부랴 문화부 기자를 정치부로 발령 냈다는 소문도 났었다. 한마디로 정치부 신참이 여당과 청와대를 출입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런 일은 계속된 경상도 정권 하에서 경력관리를 받지 못하던 전라도 출신 군 장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요 보직을 겪지 못한 이들은 당연히 승진에서도 불이익을 받지만 지휘권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지나친 불균형을 바로 잡아 균형추를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시적 불만에 흔들려서는 영원히 균형과 멀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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