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항 칼럼] 위기관리와 CEO '리더십'
[김진항 칼럼] 위기관리와 CEO '리더십'
  • 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
  • amita52@hanmail.net
  • 승인 2018.10.1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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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예비역 육군소장)
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예비역 육군소장)

리더십의 진가는 위기 때 빛난다. 평상시엔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다. 위기를 맞았을 때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되느냐에 따라 리더 능력이 검증된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쿠바미사일위기를 성공적으로 관리해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반면 후루시초프 옛 소련 서기장은 위기관리에 실패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위기에 빠진 조직원들은 리더 얼굴만 바라본다. 리더는 참모들 건의를 합리적 기준에 맞춰 판단하고 자신의 직·간접 경험과 직관을 통해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이해관계를 초월해 '필사즉생' 전략으로 위기를 관리해야 성공할 수 있다.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면 집착이 사라져 객관적 시각을 갖게 되고, 주변의 이해와 호응을 얻기 쉽다.

평상시 최고경영자(CEO)가 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조직원들이 임무와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CEO 일이다. 조직원들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시키며 내부 단결을 챙기면 된다. 

그러나 위기에 빠질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위기는 예기치 않게 일어나기 때문에 CEO를 포함한 모든 조직원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하기 십상이다. 사고체계에도 혼란이 일어난다. 사람은 보통 순조롭게 사고하고 자연스레 행동하지만 갑자기 엉뚱한 일을 겪게 되면 사고체계에 혼란이 생긴다.
 
심리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위기상황에서 사람 지능지수는 개나 고양이 수준인 80~85 정도로 떨어진다. 운전 중 작은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당황스럽고 경황이 없어 자기 집 전화번호도 생각나지 않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모든 조직원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CEO 얼굴만 쳐다보게 된다. 이 때 CEO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능력이 평가된다. 

평소 치밀한 준비를 하고 경험이 많은 CEO는 신속히 상황을 판단하고 위기 상황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CEO는 소리만 지르면서 아랫사람만 닦달한다. 평소에 준비를 하지 않았던 CEO일수록 더 큰 소리로 요란스럽게 난리를 친다. 그럴수록 상황은 더 악화된다. 

위기관리 리더십의 핵심은 판단력이다. 위기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내는 전략적 판단력이 필요하다. 누구나 판단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견지하는 가치관이다. 결국 리더의 능력이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역량을 일컫는다. 

위기가 발생하면 누구나 그 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하길 바란다. 그러나 생각과 정반대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전략적 사고 부족이다. 상황을 크게 보지 못하고 국지적인 문제에 집착해, 자기보호 본능에 사로잡힌 결과다. 위기에 빠진 사람은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고 자기중심적이 되기 마련이다. 

위험한 상황이 되면 잠재됐던 '원시인 심리'가 튀어 나온다. 당장 눈앞에 집착하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위험한 현장에 나서기가 두려워 뒤에 숨으려 한다. 그러나 치졸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대범하게 위기에 대처하는 게 리더다. 위기 국면 자체에만 집착하지 말고, 위기를 둘러싼 외연을 시·공간적으로 확대해 판을 키워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길이 보인다. 소중한 가치가 보이고, 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판단이 선다. 그 판단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할 경우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위기를 잘 관리하는 CEO가 되려면 평소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자신부터 세상의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많은 경험도 중요하다. 당장 눈앞의 문제보다는 더 크게 멀리 보는 전략적 사고를 습관화해 두는 것이 좋다. 

위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CEO 자신을 포함해 모든 조직원들이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해야 한다. 더구나 우호적 세력보다 적대적 세력이 많다. 희생을 강요하고 언론의 집요한 추적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때에 대국적 관점에서 위기 상황을 극복해 1차적으로 원상회복을 하고, 2차적으로는 전화위복 계기를 만드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위기관리의 관심은 사후에 맞춰진다. 그러나 유능한 CEO는 사전 위기관리에 관심을 갖는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지금 최정상을 찍고 있더라도 머지않아 하강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라이프 사이클'이 있다.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지금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른바 '지속편향' 속성이다. 

조직을 이끄는 CEO는 달라야 한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라이프 사이클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조짐을 파악해 무슨 의미인지 알아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세계 굴지의 기업 코닥이나 노키아가 망한 것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결과다. 기업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속편향에 빠진 CEO의 무능으로 망한 셈이다. 

리더는 전략적 관점에서 위기를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날이 가물면 물 걱정을 하고, 비가 오면 홍수나 산사태'를 걱정한다. 그러나 한 발 먼저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걱정해야 리더 구실을 할 수 있다. 

불과 2~3일간 200~300㎜ 비만 와도 침수나 붕괴 사고가 난다. 가뭄에 물을 찾기만 했지, 비가 너무 와서 물길이 막히고 넘쳐나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탓이다. 대부분 침수 사고는 하수구가 막히거나 아무렇지 않게 방치한 배수로 때문이다. 몇 년 전 경기 파주시 금촌동에서 일어난 침수 사고는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돌려놓았던 물길을 비가 올 때 바로 잡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사전대비를 하겠다는 전략적 사고 부족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이다.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배수로를 준비하고, 아무리 많은 비가 내릴지라도 저수탱크에 물을 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단계 앞서 미리 준비하는 자가 전략적 리더다. 전략적 리더가 국가 경영에 참여해야 국민이 행복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보탤 게 있다. 아무리 훌륭한 전략적 리더라도 동조자가 없으면 힘들다. 조선시대 율곡 이이는 일본 침략에 대비해 십만 양병을 주창했지만, 동조자가 많지 않아 결실을 맺지 못했다.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전략적 식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전략가의 혜안에 동조하는 국가·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전략적 리더는 최소 노력으로 미래를 대비한다. 전략적 리더는 바쁘게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미래를 예측하고 사태를 파악해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방향만 잡아주면 된다. 무슨 일이든 근원에서 출발할 때 차이가 적다. 그러나 점점 나갈수록 각도는 벌어진다. 예측하면 일을 적게 하고도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전략적 사고는 대단히 경제적이다. 어느 집단을 막론하고 전략적 리더가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집단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전략적 리더 가치는 커진다. 전략적 리더의 활동은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작은 노력으로 큰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크고 작은 문제를 결심할 때 올바로 판단해야 한다. 중요한 판단력 역시 전략적 사고의 도움을 받는다. 전체적, 미래적 차원에서 결심해야 실수가 없다. 리더는 사물을 보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우리는 행위를 하면서 사물을 보기 마련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기 위해서도 지금 일을 본다.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기 위해서도 사물을 꿰뚫어보는 통찰을 한다. 

통찰하려면 세상 이치를 알아야 하고,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수준의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통찰은 대상의 본질과 인과관계, 맥락을 파악하는 게 목적이다. 통찰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통찰은 진정한 '창조의 적극적 수단'이며 인류 역사 발전의 핵심이다. 공부하는 목적도 통찰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있는 것을 그냥 보고 있으면 별 의미가 없다. 왜 저 사람들이 모여 있는가 의문이 생기면 그 사람들 생김새는 어떻고, 어떤 말을 쓰고, 가진 것들은 무엇인지 세밀히 보게 된다. 

보는 능력은 통찰력에 달려 있다. 통찰력의 깊이가 꿰뚫어보는 정도를 결정한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눈이 정상인 사람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을 꿰뚫어보는 일은 마음 몫이다. 심안을 키우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특히, 국가지도자는 통찰력이 업무 수행에 필수요소임을 명심해야 한다. 통찰력이 부족해 좋은 의도로 시행한 정책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통찰력은 어떻게 길러지는 걸까?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경험이다. 그런데 복잡한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긴 불가능하다. 간접 경험을 통해 통찰력을 연마할 수밖에 없다. 

긴박한 위기 현장에선 전문가 직관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현장 위기관리 리더의 순간적인 판단이 성패를 좌우하기 마련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순간순간 번뜩이는 통찰력을 통해 생기는 아이디어를 '직관'이라 부른다. 직관은 평범한 직관, 전문가 직관, 전략적 직관이 있는데, 위기관리 리더에겐 전문가 직관이 요구된다. 

전문가 직관은 익숙한 것을 인식할 때, 깨닫는 순간적인 판단을 일컫는다. 사람은 하는 일에 능숙해질수록 유사한 문제들을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는 패턴을 인식하게 된다. 훈련은 전문가 직관을 기르는 방법이다. 위기의 순간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는 섬광처럼 위기를 모면할 지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전문가 직관은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2009년 1월15일 오후 3시27분 US 에어웨이즈 소속 A320 여객기가 뉴욕 라과디아 공항 이륙 후 양쪽 엔진에 거위가 빨려들어가 추력이 거의 상실된 상태에서 공항으로부터 8.5마일 떨어진 허드슨강에 불시착했다. 이 사고로 항공기는 전파됐다. 그러나 탑승자 150명 중 부상자는 객실승무원 1명과 승객 4명뿐이었다. 

당시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 기장과 부기장은 승객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허드슨강에 수상착륙하기로 목표를 세우고, 모든 비행 경험을 총동원했다. 가까운 공항 착륙도 고려했으나, 실패할 경우 승객이 위험했다. 뉴욕 도심에 추락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긴박한 순간 수상착륙에 대한 설렌버거 기장의 판단은 전문가 직관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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