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기업의 존재 의미는?
[홍승희 칼럼] 기업의 존재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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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기업인들은 10년 안에 중국과 인도의 기술력이 일본을 추월할 것 같다는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설문조사 결과 보도가 나왔다. 그 뒤를 싱가포르와 대만이 뒤쫓아 일본 기업들을 위협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일본 기업인들은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일본보다 한수 아래라고 판단했다.

이나마 꽤 순화된 표현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다. 한국은 영원히 일본의 발뒤꿈치만 보도 따라간다는 경멸이 내포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일본 기업인들이 한때는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떨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기업들의 태도를 보면 그런 멸시를 받을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답답하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강조해왔고 또 그런 주장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환경을 조성해왔다. 기업이 자선단체도 아니니 이익을 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단지 이익만을 위해 기업이 존재한다면 기업인이 투기꾼보다 나을 것이 없다.

기업이 기업으로서 존재하려면 당연히 자본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상품과 소비시장이 함께 갖춰져야만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가 한 덩어리로 갖춰지지 않는 한 기업은 더 이상 기업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국가가 정부체제와 국민, 영토를 갖춰야 존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 시스템이 정부체제에 가름한다면 노동자는 국민, 소비자는 기업의 영토를 의미하는 셈이다. 그런 토대 위에서 비로소 자본이 활동할 여건이 갖춰지고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돈이 돈을 버는 구조만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젖어 있다. 이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합당한 기업철학이 빈곤한 탓이고 국경을 넘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 봉쇄하는 짓이다.

자본의 가치만 존중되고 노동자와 소비자는 단지 대상화되고 마는 한국적 기업풍토는 더 이상 기업이 기업으로 성장하는 걸 가로막는다. 그러니 새로운 기술 환경 변화에 앞장 서 이끌어가기보다 남들 다 돈 버는 부문으로만 쫓아다니느라 우리 사회가 그토록 좋아하는 세계 1등을 이룰 방법을 잃는다.

물론 그런 현상이 기업인들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몰아붙일 뜻은 없다. 지난 번 비트코인 소동에서도 그렇고 과도한 데이터 규제를 하는 문제도 그렇고 과학적 분석, 평가 이전에 새로운 기술과 그 활용에 대한 감성적 거부감이 강한 한국사회의 분위기도 기업인들의 도전의식에 찬물을 끼얹고 있으니까.

아마도 개인정보나 인권 등을 앞세운 신기술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우리의 뼈아픈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울러 우리의 교육환경이 과학적 사유 훈련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다. 직업적 과학자를 양성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적어도 초중고교 과정에서 과학교육은 사유의 힘을 길러줄 철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만 불행하게도 현재의 교육과정에서 그런 교육적 결과를 도출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싶다.

기술적 부분에서든 기업가들의 철학적 빈곤현상에서든 우리 사회의 교육이 길을 잃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런 분위기를 바꿔가기 위해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저마다 자기 이익에만 함몰되다보면 상호불신이 합리적 판단을 앞지르게 되면서 사회는 전진할 수 있는 동력을 잃는다. 6.25를 경험한 세대가 여전히 남북관계에는 화해보다 증오를 앞세우듯 민주화 과정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는 또한 정치권과 자본가 그룹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물론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행동들이 거듭 드러나고 있어서 그런 불신이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그 후유증이 다음 세대에게까지 그대로 계승될 경우 우리 사회의 미래는 매우 어두워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에서 우울하다.

이미 미래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상실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정말 희망을 주고 싶다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시대적 사유 방식을 정립하고 참신한 비전을 공유할 길을 모색해 가야만 한다.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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