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우리 사회의 최대 결핍
[홍승희 칼럼] 우리 사회의 최대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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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요즘 대한항공 오너 일가가 또다시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재벌 3세들의 독설과 패악을 보며 그들의 오만함이 어디서 기인했을지 되새겨보게 된다.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부서진 사회에서 위협받지 않을 견고한 위치를 태어나면서부터 자각한 이들이 타인을 내려다보는 시선.

그래서 그들의 패악은 철부지의 행패와 다르다. 물론 그들도 나름의 경영자 수업은 받을 테지만 그런 과정이 오히려 너무 쉽게 손에 쥐어진 권력(단순한 재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권력이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을 더 강화시켜줬을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이미 주어진 권력을 행사하는 법만 배우게 만든 권력 승계구조는 우리 사회에 굳은살이 되어 사회적 변화를 더욱 더 가로막는다. 상상력을 토대로 한 창의적 사고는 자라날 틈도 없이 굳어진 땅에서 새싹이 돋아날 수 없는 법이니까.

반면 지금 중국은 기술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자동차산업 하나만 봐도 한국이 대기업 중심의 물량적 성장에만 매몰돼 남들 따라가기에만 급급하는 사이에 중국은 세계적 전기차생산업체인 테슬라를 제치고 자국내 전기차 시장을 거의 독식하는가 하면 이미 무인자동차 시장에서는 자국 기업간 경쟁이 벌어질 만큼 앞서 나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전기차 시장에 발을 들이미는 것도 한발 늦었고 무인자동차에 이르면 아직 시제품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 구호만 요란했지 실상 한국산업지형은 여전히 굴뚝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뒤늦음은 기업 내 문화풍토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조직원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낼 정신적, 시간적, 물질적 ‘여가’는 한없이 빈약하고 당장 돈이 될 아이디어가 아닌 순진무구한 상상력을 펼칠 자리 또한 마련돼 있지 않다.

학생시절 들었던 외국 자동차 업체의 얘기 하나가 떠오른다. 어린이들의 자동차 그림을 허투루 보지 않고 유선형 자동차를 탄생시켰다는 일화.

물론 미국이 작은 상상력 하나를 붙들고 히트시킨 상품 중엔 그렇게 탄생한 자동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인의 허리선을 본떴다는 콜라병 얘기도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으나 마케팅 분야에서 꽤 유명했던 사례인 것으로 안다.

미국의 힘은 제집 차고에서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한 젊은이들의 발랄함에서 나오고 일본의 힘은 생활 속의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중소기업들의 엉뚱한 집념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발랄함을 키워줄 사회적 분위기도 없고 엉뚱한 집념을 용인할 사회적 시스템도 없다. 그렇다고 중국인들이 요즘 보여주는 일견 무모해 보이는 기술적 도전이 만들어내는 비전도 없다.

한국 경제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제외하면 볼륨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작은 나라가 규모의 경쟁을 하겠다고 너무 대기업 중심으로 몰아주기에만 열 올렸던 그간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기형이다.

그 기업들은 여전히 당장의 돈벌이에 너무 몰입돼 있다. 스스로 한국경제를 이끌어나갈 책임감도 없다. 그러니 한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끌어갈 능력도 의욕도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가진 비중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한국 산업의 비전을 보여줄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중소기업이 열심히 궁리하고 개발한 아이디어를 거의 거저먹기로 채가는 데만 유능하다. 경영자들이 대개 경영만 배우고 기술도 인문학적 지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려서부터 돈버는 기계로 길들여졌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더 큰 문제는 기업으로 가기 전에 교육과정에서도 기본적으로 ‘상상력’을 길러낼 토양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교육은 어떻게든 상상력을 제거하는 데 집중돼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발랄한 상상력이 없이 발전의 한계에 봉착한 한국의 미래는 없다. 비단 경제 산업 분야에서만 그런 것도 물론 아니다. 학문분야는 오히려 더 자심하다. 경제학이든 인문학이든.

최근 필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학, 신화학 등의 분야를 보자면 한국 내에서만 주로 공부하고 활동하는 이들은 스승, 선배의 논문 답습 이상의 성과를 거의 보이지 못한다. 그런데 해외에서 주로 공부하고 활동하게 되면 그들의 논문은 국내 주류들과는 상이한 참신함을 갖는다.

우리 사회의 교육시스템에 뭔가 심각한 오류가 있음이 분명하다. 입시제도가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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