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대한민국 보수의 정체성
[홍승희 칼럼] 대한민국 보수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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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한 보수단체가 우리은행을 우리인민은행이라고 비판하며 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필자는 받아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TV화면에 비친 초등학생의 그림은 그저 순수한 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그린 통일의 소망을 담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 어린이의 그림을 두고 제1야당 대표는 종북 몰이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보수단체는 시위를 벌였다. 홍준표 대표의 발언과 보수단체의 시위 사이의 선후관계는 잘 모르겠으나 한국 보수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입맛이 쓰다.

요즘 각종 방송매체며 신문 등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자유한국당의 목소리들은 대개가 사실 확인이 부족한 ‘소문’을 활용한 선전선동에 치우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대표적인 인물이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의원으로 드러나지만 당의 얼굴이라 할 이들의 잇단 발언들이 너무 무게감이 없어서 마치 시대의 각질이 벗겨져 나가는 모습인가 싶기도 하다.

근래 홍준표 대표가 일본 가서 한 행동과 발언, 위안부 합의 문제를 둘러싼 과잉방어 행위, 자유한국당이 회심의 공격무기로 들고 나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특사방문 문제를 둘러싼 쟁점화 시도는 야당 정치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스스로의 위상을 갉아먹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위상에도 흠집을 냈다. 국민들의 얼굴에도 먹칠을 한 것은 물론이고.

솔직히 대통령이 스타일 살짝 구기면서까지 이미 전 정권이 잔뜩 흐트러뜨린 외교문제를 뒷수습하기 바쁜 외교행보에 국정농단의 책임이 큰 자유한국당이 대통령 스타일 구긴 것만 갖고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모양새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UAE와의 외교문제를 홀딱 까발리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것 역시 전 정권이 잔뜩 어지럽힌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행보임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상태다 보니 더 가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더 황당한 것은 남북관계가 근 10년 만에 재개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미리 결과를 예단하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도 황당하다. 물론 대화를 재개한다고 당장 무슨 큰 성과가 날 리도 없고 관계를 맺어가는 길이 결코 순탄치도 않을 것이다. 핵 개발했다고 미국을 향해 큰소리 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는 단순히 남북한 간의 문제로만 해결되기도 어렵다.

또 대화에 나서는 양쪽이 모두 저마다의 목표하는 바가 다른 게 정상이다. 그걸 알면서 하는 게 대화 아닌가.

그걸 상대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니 만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면 결국 원하는 게 전쟁이라는 말 밖에 안 된다. 가뜩이나 한반도에서 전쟁 한판 벌이고 싶어 근질근질해 보이는 트럼프의 미국을 우방으로 두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어떻게든 전쟁을 막아보고자 길을 모색하는 정부를 향해 미국의 심기 건드릴까 두려우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미국 하자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라는 것은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로서의 자존심마저 버리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마치 우리가 총알받이가 되기를 자처하라는 소리로 들릴 지경이다.

보수로 자처하는 극우집단들의 요구대로 따르다가는 우리가 미국의 버릴 수 있는 패가 될 수도 있는 게 국제관계 아닌가. 저들은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지만 어느 나라 보수집단들이 자국의 정체성을 외세에만 기대어 목청을 높이는가.

예전 스스로를 ‘아시아인’이라고 정의하는 한 재일교포 출신 화가와 인터부를 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화가가 ‘한국에선 어떻게 진보가 민족주의적인가’라고 의아해 하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보수는 결코 민족주의적이지 않으며 단순한 친미세력일 뿐이었고 오히려 한국의 진보는 민족주의적이라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그 친미세력들의 뿌리는 친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은 여러 증좌들이 있다. 특정인 누가 친일파였기 때문이 아니라 일제의 식민사학을 옹호하는 뉴라이트 그룹을 품고 있는 정당의 현재 모습부터가 그런 의구심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자유한국당의 현재 모습이 한국 보수의 전부라면, 단지 정치인 개개인의 이익만을 쫓는 게 보수의 속살이라면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머잖아 용도 폐기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그런 보수는 피부의 각질처럼 시대적 변화를 따라 벗겨져 나갈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새로운 보수는 구심력이 약해서 보수집단의 혼돈은 당분간 이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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