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Eroom 법칙'에 도전하는 韓제약업계
[전문가기고] 'Eroom 법칙'에 도전하는 韓제약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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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 메리츠종금증권 수석연구원

Moore's Law(무어의 법칙).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인텔의 공동 설립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내 놓은 이 법칙은 지난 3월 반도체 업계가 'More than Moore's Law(무어의 법칙을 넘어)'를 주창하며 포기를 선언하기 전까지 IT업계의 성장을 이끌어온 핵심 동력이었다.

2012년 3월, 신약개발에 대해 다루는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에는 이와 정 반대되는 개념인 Eroom(Moore를 거꾸로 쓴 것)의 법칙을 제안하는 글이 실렸다.

신약개발을 위한 비용이 9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더라도, 1950년대에 1조원을 투자하여 100개에 가까운 신약이 개발됐다면 현재는 1개도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시장은 7조5000억원 대박을 이뤄낸 한미약품의 영광을 이어갈 '제2의 한미약품 찾기'에 몰두해 있다. 코스피 지수가 수 년간 박스권에 갇혀 2000포인트를 넘나드는 동안 코스피 의약품 산업 지수는 '한미약품 사태'가 있었던 2015년 한 해에만 183% 성장했고, 그 흐름을 현재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Eroom의 법칙을 주장한 논문의 저자들은 신약개발 비용의 증가 원인을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첫째, '비틀즈 보다 좋아야 한다'는 문제. 즉, 기존의 블록버스터 신약을 넘어설 만큼의 좋은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주의 깊은 정부'의 문제. 입덧 방지 의약품으로 개발돼 수만 명의 기형아를 낳게 한 '탈리도마이드'나 속쓰림 없는 혁신적 진통제로 출시돼 약 3만명의 추정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퇴출된 '바이옥스'가 의약품 허가기관에 큰 교훈을 줬다는 것이다.

셋째, '과도한 투자 성향'. 제약사간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더 빨리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초 연구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신물질 발굴을 위해 무차별적인 스크리닝(유효 성분 탐색)을 하는 문제. 즉, '전략적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미약품은 어떻게 성공 신화를 이루었을까? 먼저, '전략적 접근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개량신약 개발과 타깃 항암제 시장 공략이라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통해 '주의 깊은 정부의 문제'와 '비틀즈 문제'를 넘어설 수 있었다.

개량신약은 기존의 의약품을 개선해 만드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허가가 쉽고, 기존의 약물보다 환자 순응도가 좋아진다. 타깃 항암제의 경우 생사의 문제가 달린 중요한 의약품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소 부작용이 심하더라도 용인될 수 있으며, 허가 기간 단축이 가능하다.

또한 '과도한 투자 성향'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사노피의 3세대 폐암치료제 출시로 시장 점유율 하락에 대한 위협을 받고 있던 베링거잉겔하임에 자사의 폐암 치료 신약으로 러브콜을 보냈고, 노보-노디스크의 맹추격에 지쳐있던 사노피에 신개념 당뇨병 치료제를 제시하며 인슐린주사제 시장 점유율 1위 수성을 위한 욕심을 자극했다. Eroom의 법칙에서 제시한 4개의 허들을 때로는 정면돌파 하고, 때로는 상황에 맞게 이용하면서 7조5000억원의 메가딜을 성사 시킨 것이다.

국내 제약업계의 '성공의 조건'이 여기에 있다. 한국의 제약산업 생산액은 2014년 기준 16조5000억원 규모로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 1000조원의 1.6%에 불과하다. 이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과도한 투자 성향'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존 치료제 시장에 맨몸으로 뛰어들기 보다는 전략적 접근을 통해 글로벌 제약업계의 미충족 수요(Unmet needs)를 채워주며 동반성장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존의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을 재정비하고 그 중에서 함께하고픈 욕구를 만들어주는 후보물질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과 '함께' Eroom의 법칙을 넘어 신약개발 성공 신화를 이뤄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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