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칼럼] 은행원들의 시린 봄
[홍승희칼럼] 은행원들의 시린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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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한때는 참으로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은행원들은 공무원보다 임금 수준도 높으면서 정년퇴직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대표적 화이트칼라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은행원들이 요즘은 실직위기가 코앞으로 닥쳐와도 속수무책이다. 성과연봉제 도입 움직임, 모바일뱅킹·로보어드바이저 확산 등으로 인한 임금 삭감과 고용불안의 심화, 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에 따른 실적 압박 등 스트레스 요인도 크지만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한 거의 연례적인 희망퇴직 한파에 더욱 이 봄이 봄답지 않게 시리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금융산업 자체가 위기를 겪으며 금융선진국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경기부진이 지속되는 데다 금융위기도 위기지만 재정위기도 곧 금융위기로 이어지며 전 세계 금융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국내 금융업 임직원 수는 2012년 29만9717명에서 2015년 9월 기준 28만5천29명으로 3년 새 1만4천700명이 감소했다는 게 금융감독원 자료다. 3년만에 거의 5%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이런데도 한국은 약과란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지난해 한해동안에만 10만명의 금융인력이 줄었고 향후 10년 동안 200만 명의 은행 인력 감축이 예상된다고 시티은행에서는 보고서까지 냈다.

은행보다 증권업 쪽은 훨씬 더 변동성이 크다. 1998년 IMF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정년퇴직은 사라졌고 쉰 살을 넘은 증권맨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증권사에서 40대 간부급들을 만나면 쫓기듯 고객들의 단타매매를 종용받기 일쑤다. 실적에 목매다는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 자심한 것이다.

산업자본이 미래먹거리를 위한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하듯 은행은 대출처를 찾지 못한 채 유동자금 적체에도 손 놓고 있다. 미래가 불확실한 경제현실 탓이다.

특히 그 어느 직장보다 ‘안전’을 중시해야 할 은행업의 특성상 위험성이 큰 대출에 적극 나설 수도 없을 것이다. 신용도에서조차 빈부간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서민들은 고금리 대부업체 혹은 불법 사채로까지 내몰려가는데 은행은 대출할 곳을 찾을 수 없어 방황한다.

그러나 저축하는 국민들은 더 높은 이자만 좇아가지 못한다. 금융업의 구조조정 위험을 이미 경험해본 까닭이다. 그래서 제로금리에 접근해가는 은행예금에만 매달린다.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해 마음 놓고 여유자금을 소비할 처지도 못되는 국민들은 이자도 거의 없다시피 한 은행예금에만 목매다보니 지난해 가계 순저축률이 15년 만에 최고치에 이르렀다지 않은가.

오늘날 금융인들의 위기는 IT기술의 발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정부의 보호 아래 산업자본의 틈입을 봉쇄한 채 안정을 구가해오며 다가오는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고 금융산업이 그동안 거대 공룡화로만 치달은 결과일 수도 있다. 정책금융 집행 창구로서의 은행업에 너무 편하게 안주하며 덩치만 키우면 세계적인 경쟁력이 생길 듯이 인수`합병에만 집중했을 뿐 새로운 경쟁자가 될 IT기술을 어떻게 도입`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민하지 못한 결과로 IT기술을 활용한 산업자본의 규제 장벽 뛰어넘기에도 손을 놓고 있다.

한국 정부도 더는 세계적인 추세를 외면한 채 은행업을 보호해줄 수 없게 됐다. 그 바람에 은행원들의 실직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쓰다 버리는 헌 신발짝처럼 노동자들을 취급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버려지는 노동자들이 모두 사회적 자산이다. 당연히 금융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금융인들도 우리 사회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국가적 자산이다.

그래서인지 정부도 금융자문업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금융인들의 인적자원이 그대로 버려지지 않고 금융전문 자문인력으로 재탄생할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많은 자문인력이 쏟아져 나오면 이제까지 고액자산가들만 누리던 자문 서비스의 혜택이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그 많은 인력이 금융자문업으로 뛰어들어 과당경쟁이 벌어지면 그 때 발생할 위험부담 또한 그만큼 커질 테고 미국에서 종종 벌어진다는 연금 날려먹기 같은 사고로 노년이 비참해지는 사례도 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물론 어떤 변화에도 위험부담은 따르기 마련이니 지나친 기우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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