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칼럼] 회귀의 유혹은 달콤한 마약
[홍승희칼럼] 회귀의 유혹은 달콤한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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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밤에 눈 쌓인 산길을 걷다보면 겉보기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제자리를 맴도는 현상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때를 두고 눈길에 홀렸다고 표현하는 이를 본 적이 있다.

깜깜한 산길, 게다가 눈까지 쌓여 주변 환경을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지의 세계, 두려운 미래를 앞에 두고 주저하는 인간의 본능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노인들이 옛 기억에 사로잡히거나 새로운 변화에 부정적이기 쉬운 것도 같은 현상일 터다.

이런 현상이 꼭 산길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처럼 경기가 제자리걸음을 넘어 뒷걸음질의 조짐마저 보이며 개개인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일 때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도는 하지만 결국 같은 범주 안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쉽다. 그렇게 적은 자산이 갈수록 더 줄어들 위험성도 커진다.

그런데 이게 개인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도 아닌 모양이다. 요즘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보면, 그래서 국회에서 매우 드물게 필리버스터가 며칠씩 이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계속 민주주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무언가 손쉽고 간편해 보이는 방식에 혹해 제자리걸음, 혹은 뒷걸음질을 도모하는 것은 아닌가 싶으니 말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테러방지법 자체가 아니라 그 법의 내용과 관련이 돼 있지만 언론은 연일 필리버스터의 시간 기록 따위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라 국민적 무관심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명백하게는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고 정부가 역설한 계기가 아직 국제적 규정상 테러조직으로 명백하게 지목된 것이 아닌-물론 잠재적 테러집단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존재하지만-북한의 핵실험과 고고도 로켓 발사실험이라는 점도 문제 제기될 충분한 이유가 되겠지만 한국 내 분위기에서 그 문제까지 거론할 정치인은 없는 모양이니 넘어 가자.또 북한이 문제라면 이미 그 존재자체가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던 국가보안법 등 관련법들이 있으니 그 위에 뭘 더 만든다면 옥상옥이 될 텐데 그 필요성이 있는지 애매하다.

야당이 며칠을 두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실상 문제가 되고 있는 조항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은 국가정보원장이 ‘의심’된다고 판단하면 영장 없이도 누구나 감청을 포함한 다방면의 정보수집이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상 과거에도 국정원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간첩행위가 의심된다며 불법 감청 따위를 별 거리낌 없이 해왔음을 상기하면 테러방지법을 다시 국정원에게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다시 쥐어주자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과거의 전력이 그러한데 다시 그런 일들이 반복되게 할 것이냐는 반론이 당연히 나올 조건인 것이다.

스스로는 예전 같지 않다고 강조하지만 여전히 국정원의 위세는 대단하다. 그런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을 계기로 다시 그 옛날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고 정부는 그런 국정원에 날개를 달아주고자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안전이 위험에 직면했음을 강변하며 필리버스터 중인 야당을 맹비난했다. 하지만 국민의 개인비밀보호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법원의 영장 발부 권한까지 뛰어넘는 초법적 권한을 이미 막강한 힘을 가진 기관에 쥐어주는 것이 사회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좀 더 반대의견에 귀기울여 듣는 자세가 아쉽기만 하다.

실상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막강한 신임을 받았던 국가정보원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수장이 나서서 대통령에게 총을 발사했던 기억으로 보자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저 끝간 데 없는 신뢰는 좀 의아하기도 하다. 사실 여부와는 별개이지만 박정희 정권시절 내내 경찰에서는 좌익 경력이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 그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경찰을 싫어한다, 멀리한다는 불만이 팽배했다고 하던데.

권력이 한곳으로 쏠리면 그 조직은 당연히 부패하기 마련이고 그런 부패한 조직이 가진 영향력으로 사회 전체가 병들 수밖에 없다. 각국의 정보수집능력이 국력과 비례한다고 본다면 국가정보원의 역할이 꼭 필요하겠지만 초법적 권력기관이 되는 것은 그 조직을 위해서나, 국가사회 전체를 위해서나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가 너무 뒤돌아보며 노화하도록 방치하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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