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이 부른 외교적 패착
조급증이 부른 외교적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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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한국 정부가 역시 미국과 일본의 합동 압박에 굴복했다. 내년 한일 정상회담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28일 외교장관회담에서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일본 측 주장에 한국정부가 거의 무기력하게 끌려가고 말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한일관계의 진전을 막았던 역사적 이슈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 따위는 없었다. 그럼에도 취임 이후 내내 경색되었던 한일관계를 임기 내에 어떻게든 풀어보려는 박근혜 정부의 조급증이 외교적 완패를 초래했다.

그럼으로써 일본에는 서둘러 면죄부를 쥐어주고 역사적 반성의 기회를 사라지게 했으며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짓밟혔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국 정부에 의해서도 다시 내팽개쳐졌다. 일단 전쟁기간 중의 반인륜범죄에 대한 협상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못했으며 일본 정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도 묻어버렸다.

게다가 반성한다면 자국의 젊은이들에게 역사적 죄과를 잊지 않도록 가르쳐야 할 일본은 적반하장으로 그 죄과를 떠올리게 하는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번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서 한국 정부는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답함으로써 실상 일본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고 말았다.

위안부 소녀상은 정부가 건립한 것도 아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염과 혹한에 맞서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이어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가 1천회를 넘으며 시민 모금으로 마련된 비용으로 건립된 위안부 소녀상이다. 그러니 정부가 거기 대해 왈가왈부할 권한도 없다.

이미 위안부 소녀상은 국내에 24곳, 미국에 9곳, 일본에 1곳이 세워져 있어 일본제국주의의 반인륜 범죄를 알리는 상징이 됐으며 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런 힘을 바탕으로 그동안 한국 정부도 위안부 관련 자료들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동아시아의 노력을 주도해왔다. 이런 노력도 이제 물거품이 될 형편이 됐다.

아시아에서 한국의 외교적 역량도 심각하게 훼손되며 초라한 몰골로 변하게 됐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일본이 끄는 대로 맥없이 끌려 다니는 한국 정부에게서 어느 나라가 외교적 역량을 신뢰하며 진심으로 손을 잡고 협력하겠는가.

어찌 보면 일본도 참 딱한 나라다. 일본이 진정으로 역사적 죄과를 반성한다면 그 죄과를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노력함으로써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깨우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제국주의의 망령을 한껏 끌어안고 그 죄과를 덮기에 급급해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파렴치한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는 역사인식의 결여이면서 동시에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는 행위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후안무치의 극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일본을 중국 고립화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가치만으로 중요시하는 미국은 한국 정부를 그런 뻔뻔한 일본과의 일방적 협상장으로 끌어내기에만 골몰해왔다. 이번의 무기력한 한일외교로 인해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하던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성과도 사실상 형해화 되어 가고 있다.

역사가 짧은 미국,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두터운 역사의 덮개 위에 선 오늘날 자국의 모습에 심하게 취해 역사적 교훈을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사의 긴 줄기를 무시하고는 인류가 이룬 오늘날의 모든 문명도 한순간에 야만의 먹이로 전락해버릴 위험성이 매우 높다.

인류의 역사는 반복적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되풀이함으로써 문명적인 높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집단지성은 여전히 저급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허약한 현대 문명의 정신적 기반으로 인해 곳곳에서 배타성과 차별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연약한 목숨들이 위협받고 또는 생을 마감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은 이런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며 특히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인류의 미래가 상처입고 있는 셈이다.

지금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트럼프 같은 인물이 가장 유력시되는 이유도 역사적 경험이 제한적인 미국의 일천한 역사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의 승승장구는 그런 토대가 허약한 집단지성이 그려내는 미래 미국의 초상화일지도 모르겠다. 덮기 급한 일본, 모든 세계를 손아귀에 그러쥐기에만 몰두하는 미국, 미래의 제국주의적 패권을 노리는 중국, 그 틈에서 한국은 지금 제정신을 어디 두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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