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음모론
외환시장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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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환율이 급락, 외환 당국을 바짝 긴장시켰다. 한국은행은 당장 외환대책회의를 열고 일단 시장에 엄포를 주었다. 5일 장 마감 직전에는 15분만에 환율이 5원씩 빠지는 엄청난 급락세를 보였으니 당국이 긴장하고 지켜보는 것은 마땅하다.

5일의 막판 투매장세는 모건스탠리, 리먼브라더스 등 외국 투자은행들이 주도했다고 알려졌다. 장기적으로는 환율 하락이 불가피하겠으나 이 날과 같이 급락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율방어를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약화됐다’는 루머가 퍼지고 역외세력들이 대거 투매에 나서며 하루만에 11.2원이나 떨어졌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1월 13일의 986.30원에 거의 근접한 987.30원으로 마감됐다. 8년여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당국의 재빠른 대응에 일단 6일 외환시장은 다시 995.0원으로 출발, 990원대 초반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새해 벽두부터 역외세력들이 외환시장을 이렇게 흔드는 배경이 무엇인지를 좀 더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듯하다.
 
요즘 우리 사회가 음모론에 넌더리내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미국이 보는 대한민국의 현재 입지가 결코 우리의 순진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IT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산업기술의 테스트베드로 인정되고 있다. 이제는 한국의 금융시장도 그렇게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한국의 달러 보유규모는 중국, 일본, 대만에 이은 세계 4위다. 외환보유고 1~4위가 모두 동아시아 국가라는 점은 유의해 봐야 할 대목이다. 세계 최대 채무국 미국의 입장에서 이들 동아시아 국가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부담을 느낄 대상이 돼버렸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황화론(黃禍論)의 변이들이 영화 속에만 내포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환타지 영화에서 보여주듯 역사적으로 황색인종들에 대한 두려움과 강한 거부감을 지닌 채 각종 신화를 만들어냈던 유럽인종들이 지금 미국의 주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그 미국이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는 중국이 지금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다. 그 중국과 직접 충돌하기에는 제아무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라 해도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변죽을 울리며 반응을 떠볼 대상이 필요하고 한국은 그런 실험대상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볼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옆에 있다가 파편 맞듯 미국 금융자본을 이용한 시장 반응 테스트의 마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어차피 달러화 약세는 피하기 어려운 추세이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그 추세 자체를 역이용할 방법을 모색할 것이고 그러자면 동아시아 4국에서 끊임없는 임상실험을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국 금융시장은 미국의 끊임없는 실험장이 돼 시달릴 위험이 크다.

우리 속담에 ‘모진 놈 옆에 있다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여러 측면에서 미국과 등 돌릴 수도 없는 한국이 이제 스파링 파트너로 적합한 체격을 갖췄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적절히 북한 카드를 사전 예고처럼 들고 나오며 우리에게 스파링을 시도할 것이다.

낚시꾼들이 제일 질색하는 게 물고기들이 미끼를 물지는 않고 입질만 계속 하는 상황일 것이다. 찌가 아예 꿈쩍도 않으면 주변 경치라도 살피고 낮잠이라도 즐기겠는데 계속 찌는 까딱거리고 물리지는 않으니 짜증스럽다.

일단 미끼에는 흥미가 있으나 배가 부른 물고기들을 만난 것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선택은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지금 미국이 자국의 금융자본들을 이용해 한국의 외환시장을 집적대면 한국의 보유 외화를 좀 더 빠르게 다른 통화로 바꿔가는 역 테스트를 해보는 거다. 어차피 보유 외화를 다양화할 필요는 있지만 시장 파급효과를 고려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우리다.
 
미국이 우리 시장을 실험하면 우리는 저들의 정책을 시험해보는 거다. 피하기 어려운 스파링이라 해도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는 스파링 파트너는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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