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역 규모 1조원의 무게
남북 교역 규모 1조원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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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를 아직도 적대적 관계로만 보는 이들은 정부의 민족화해 노력을 폄하하고 비난하기를 거듭하고 있다. 미국이 적대하는 북한에 남한이 끌려다닌다고 불평하고 전가의 보도처럼 색깔론 휘두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남과 북은 경제적으로 깊숙한 관계를 맺은 상태다. 이 상태에서 관계를 되돌리면 그 타격은 북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남한 역시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새해에는 이미 변해버린 민족공존의 틀을 깨려 들기보다 어떻게든 함께 잘 살아남기 위한 협력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2005년 중 남북간 교역규모는 1조원에 달했고 하루 1천200명이 왕래하며 하루 평균 1백여명의 남한 주민이 북한지역에 체류하고 매주 1건씩의 협력사업을 진행했다. 당장 개성공단에 입주가 시작되면서 북한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손으로 생산한 물자들을 대한민국 브랜드로 해외에 수출하고 남한 소비자들도 사용하고 있다.

지금 북한에서는 지하자원 개발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이런 북한의 경제회생 노력에 중국은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따라서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북한의 각종 개발사업을 중국이 선점할 가능성은 갈수록 커져간다.
 
 2006년에는 이런 중국의 공세적 투자를 무력화시킬 만큼 민족 내부투자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미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큰 북한 지역을 영영 우리 민족과는 무관한 영역으로 간주, 포기할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미 중국은 만주지역에 대한 보다 확고한 통치권 행사를 위해 역사공작까지 시작했다. 동북공정의 목표는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 강단 사학계가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고조선사를 부정하는 사이에 고조선 초기 유적이 분명한 홍산문화유적 발굴 등을 통해 이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기 위한 수순을 착착 밟아가고 있다.

중·일간 불법적 합의에 의해 맺어진 간도협약이 80년을 넘기는 시점에서부터 중국은 유효적 지배권을 역사적, 이론적으로 공고화하기 위한 역사공작을 시작했다.
 
아편전쟁 이후 굴욕적으로 맺어졌던 홍콩과 마카오의 조차관계를 100년 되기 전에 서둘러 해소시킨 중국으로서는 유사한 사례로서 간도협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그래서 점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적 배경을 끌어대려 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요즘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사 전부를 중국의 변방사로 편입할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중국은 과학적 연구를 내세우면서도 오랜 세월 한국 사학계를 길들여온 일본과 중국 사학연구의 틀에 안주하는 국내 사학계의 미성숙한 연구 성과를 역이용해 역사 잠식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고구려 강역의 일부였던 북한 지역마저 같은 민족이기 이전에 적으로 돌림으로써 우리 고대사의 지배자로 나서려는 중국에 아예 역사 상납을 도모하는 꼴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 교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현실적 위험요소를 제거하며 공존할 수 있는 틀을 짠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경제적 토대 위에 사회·문화적 교류를 촉진함으로써 상호 이해에 바탕한 협력과 연대, 나아가 통합의 분위기를 공고히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

이제 색깔론으로 우리 발목을 스스로 잡는 일은 그쳐야 한다. 56년 전의 전쟁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그 자체로 유효한 학문적 주제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정치·경제 영역의 이슈로서는 유효기간을 넘겼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미 식민지배를 통해 우리 민족을 불구로 만들었던 일본과도 협력적 교류를 시작한지 40년이다. 양국간 과거사에 대한 갈등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적으로 간주되지도 않는다.

세월이 가면 모든 관계는 그렇게 현실의 필요에 맞춰 변해가는 것이다. 사랑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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